솔직히 말해서 2024는 매일같이 "내가 이 정도인 건 아닌데,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해였던 것 같다. 올해를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Jen-Feb: 공모전 참여
24년도의 첫 시작이자 마지막 겨울 방학은 내내 GDSC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Google Solution Challenge 2024를 위한 개발을 하면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진행했던 것 중 가장 독특한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Wearable 기기, 그것도 AI를 적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재미도 있었고 정말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또한 구글이 요구하는 빡빡한 조건들을 모두 맞춰서 프로젝트 개요를 쓰느라 정말 힘들기도 했고, 프로젝트 기획서를 제대로 써보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Java/Kotlin 환경에서 AI 모델을 다루는 게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운 일인지, 파이썬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쉽게 공모전에는 떨어졌지만, 이런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해준 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더 자세하게 프로젝트를 보고 싶다면 아래 깃허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Mar-Jun: 졸업 프로젝트 마무리와 졸업여행
방학을 지나 다시 학기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졸업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이 시기에는 정말 일주일에 하나씩 굵직한 feature를 개발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이렇게 긴 프로젝트 하나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팀원들 모두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개발을 했었다. 정말 많은 기능을 넣어서 여기서 이야기하긴 너무 길고, 아래 회고록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또한 이 시기에 내 커리어의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교수님과의 세 차례 상담 끝에 극적인 타협(?)을 보고 대학원에 가게 된 것이다. 1학기 내내 정말 죽어도 대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무언가를 '죽어도 하지 않겠다'라는 말은 쉽게 하지 않길 바란다. 이건 상대방에게 더 적극적으로 설득할 동기부여를 줄 뿐이다.
종강하고 나서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같이 졸업 프로젝트를 했던 chaen 언니와 하와이를 다녀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쌓였던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Jul-Aug: 졸업식과 마무리
방학에는 나름 여유 있을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7~8월은 정말 너무 바빴다.
우선 이 기간에는 정말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있었던 모든 일에서 졸업했다. GDSC (이제는 GDG on Campus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와 AWS Cloud Club 활동 종료, 학부 인턴 때 진행했던 논문 작성 및 제출 완료, 졸업 프로젝트 완료, 그리고 무엇보다 학부를 졸업했고,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졸업식도 치렀다.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점이라면 4년 만에 정말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C언어 기초부터 배웠던 1학년과 지금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사람이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4년이면 뭐든지 바꿀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느껴진다. 4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깃허브 잔디로 요약하는 게 가장 간단할 것 같다. 커밋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년 2x 정도는 성장해 온 것 아닐까?
한편으로 또 드는 생각은 이젠 어딜 가도 이화에서 보낸 학부 시절과 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전에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학잠을 입고 지하철에 졸고 있었는데 처음 뵈는 분이 갑자기 나에게 "저도 이대생이였어요!"하면서 망고젤리를 주신 적이 있었다. 졸업하고 난 지금에서야 그 기분이 이해가 간다.
Sep-Nov: 인공지능 보안 연구실 석사생 (+랩장)
9월이 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보안 연구실에서 석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석사 1학기 차부터 바로 랩장에 임명이 되었다(?!). 랩장이라는 직무에 조금 부담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연구실을 이것저것 바꾸고, 맴버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게 적성에 잘 맞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랩장의 권한으로 연구실 간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행복했다.
이와는 별개로 나는 대학원 생활이 정말, 진짜, 굉장히 힘든 거고,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이 전혀 과장된 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지적 수준은 많은 input을 넣고 output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원 생활을 시작할 때 주말이나 퇴근 없이 계속 공부하고 실험할 거라고 다짐하고 시작했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2학기 때 나는 일주일에 논문을 3개씩 읽고, 매주 6번씩 프로젝트 미팅을 하고, 4개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면 일주일이 끝나 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진척이 거의 없는 프로젝트들이였다. 랩실에서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3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방향성을 종잡지 못하고 있었고, 하나는 학회에 냈으나 reject되었고, 다른 하나는 실험 결과가 매우 안 좋은 채로 첫 번째 학기를 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연구할 때 좀 실수했던 것 같다. 모든 프로젝트에서 매주 열심히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한 것은 맞지만, 연구라는 것을 '어떻게'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다. '많은 input과 output'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래서 그 input을 어떻게 내 연구에 적용할 거고, output이 나오면 내 연구의 방향성을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못했다.
연구라는 것은 항상 1. 가설을 세우고, 2. 그 가설에 맞는 실험을 하고, 3. 실험 결과가 나오면 내 연구의 방향성을 수정하거나 더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아주 멋진 결과가 나오더라도 위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게 아니라면 사실 그냥 운이 좋았던 거고, 운이 좋은 것은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난다. 하지만 AI 연구에서 좋은 부분 중 하나는 내가 받는 결과가 아주 명확하다는 점이다. 다양한 benchmark와 metric으로 내 방식이 옳았는지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고 이를 피드백 삼아서 방향을 빠르게 수정할 수 있다. 매우 힘들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연구에 대한 눈이 조금 트인 느낌을 받은 중요한 시기였다.
Dec: 학회 참여와 한 해 마무리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12월은 정말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우선 미리 계획되어 있던 Annual Computer Security Applications Conference (ACSAC) 2024 컨퍼런스를 포스터 세션으로 다녀왔다. (포스터 링크) 사람들이 몇십 명 정도 계속 연구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질문에 답해주면서 얼마나 학회의 사람들이 열정이 넘치고 친절한지 알게 되었고,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도 많이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즐겁게 발표할 수 있어서 매우 재밌었다. 왜 사람들이 굳이 먼 나라까지 가서 학회에 참가하는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 외에도 있었던 (우리가 모두 아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12월은 과연 내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지난해에 썼던 연말결산을 보면 목표가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개발에 미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을 더 많이 가는 것'이였다. 이 목표를 크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깃허브 커밋도 처음으로 1000개를 넘어섰고 해외여행 세 번에 국내 여행을 한 번 갔기 때문에 목표 달성을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1년이 마무리되는 지금 나의 질문은 "self-motivation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이다. 나는 대학 생활 4년 내내 동기를 열정, 성장에 대한 열망, 개인적인 성취, 보상 등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열정이나 성취를 나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종의 환상에 빠져 있던 게 아닌가 한다. 사실 진짜 필요한 것은 열정이 없어도, 감정적으로 바닥인 상황이어도, 성취나 보상을 얻지 못해도 나를 붙잡아줄 하나의 끈인 것 같다. 아래의 글처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종이와 연필을 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종이와 연필'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봐야 한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를 지탱해 줄 단 하나의 끈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아래와 같이 정했다. 대학교 4년과 석사 1학기 동안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면서 이 학문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라는 생각이 항상 들었었다. 근사하고 어려워 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준다느니, 사회의 어떤 문제를 푼다느니 하는 소리를 떠들지만 사실은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것이다. 이런 의구심이 자꾸 드니까 더 시각적으로 보이는 성취에만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일에 대해서는 영화 <가타카>에 나오는 것처럼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 널 이기는 거야."처럼 온전히 헌신하고 싶지만, 일을 떠나서 내 삶의 동기는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로 삼을 예정이다. 따라서 25년도의 목표 2개는, 1. 봉사활동을 최대한 많이 하기, 2. 삶을 구조화해서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기, 이렇게 정하려고 한다.
'🎉연말결산 및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년 동안 진행한 졸업 프로젝트 회고 (0) | 2024.07.24 |
---|---|
Cathy의 2023 Wrapped 연말결산✨🎉 (0) | 2024.01.01 |